Art Space Grove 3기 작가 선정작 전시
2020. 07. 03 – 2020. 07. 23
아트스페이스 그로브
언젠가부터 꿈속의 장면들을 기록하게 됐다.
아무리 짧은 잠이어도 꿈에서의 시간은 현실의 것과는 그 부피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에서의 생각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변명일지 모른다. 수면을 취하는 제한된 시간 동안 꿈은 무한히 증식하고 확장하며 그 위태롭고 불온한 움직임을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게 된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한 가지의 문제에 집중하면 어느 틈엔가 그 해답이 슬그머니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해답은 과연 나의 의식이 시간을 들여 추론한 결과물일까? 아니면 찰나의 순간에 들이닥친 무의식이 뚫어준 구멍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의식의 유한함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의식은 내가 깨어 있음으로 작동하고, ‘물리적으로’ 생각과 감각이 마구잡이로 뻗쳐 나갈 만큼 넓지 않은 것 같다. 의식은 위태로운 농담과 터무니없는 꿈으로 드러나는 연속된 무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이고, 실제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마 무의식일 것이다.
다만 공간과 경계는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내가 꿈이라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그 모든 감각들은 의식이라는 경계에서 얻어온 것들이다. 이 경계에서 받아들인 새로운 정보를 무의식이라는 공간에 풀어 놓고 마음껏 뛰놀게 하는 것으로 나의 불완전한 사고가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다.
무한한 경계, 무한한 공간, 둘 중에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찰나의 꿈은 좁디 좁은 수면 시간동안에도 제맘대로 덩치를 키울 수 있고 또 반대로 마음껏 작아질 수 있다. 가느다란 경계의 벽 위에서 우리는 늘 새로운 것들을 수확해 무의식이라는 집으로 가져오곤 한다. 공간과 경계 사이에 올라서 이 둘의 작동 방식을 꿰뚫어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이 둘 사이에 뚫린 작은 구멍을 알아챌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또 할 수 있는 일들로만 가득한 곳, 나의 불온함이 그 자체로 가능성이 되는 무의식이라는 ‘공간’과, 나를 성장케 할 새 것의 정보와 감각이 흩뿌려진 ‘경계’ 사이에서 제멋대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나의 자아를 흔드는 그 출입구를 찾고자, 우리는 먼저 꿈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